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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에이 씨가 남긴 [토미오카 일기]는 당시의 여공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피를 빨린다]라는 소문까지 돌아서 좀처럼 사람이 모이지 않았던 토미오카 제사 공장에 17세의 나이에 신슈마츠시로에서 토미오카로 향한 에이 씨는 무엇을 느꼈을까…?. 에이 씨가 당시에 생활을 기록한 [토미오카 일기]에서, 당시의 토미오카 제사장이 어떤 것이었을까? 또한, 여공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일하고 있었을까? 를 조금 들여다 볼까요.
富岡工女として日本の近代化に大きく貢献した和田英。

일단 여기까지만 보면 불안한 전개입니다. 실은 토미오카 제사장을 창립할 때에 여공을 모집했지만, 외국인 기술자가 마시던 적포도주를 사람의 피라고 착각하여 만들어진 오해입니다.
이 오해가 널리퍼진 결과, 적령기의 여자를 제사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결혼시키는 등의 소동도 일어났다고 합니다.

신슈 마츠시로를 출발하여 토미오카에 도착하기까지 우스이토게 고개를 넘는 장면.
우스이토게 고개는 군마현(요코카와: 표고 387m)과 나가노현(카루이자와: 표고 939m) 사이에 약 10km 정도의 거리에 500m 이상 높이차가 있는 급경사면의 고개로 꽤 힘든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나카센도 길이 정비되어 있어, 여자의 걸음으로도 그렇게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짚신, 치카라모치 떡, 신발, 단맛 등 사용하고 있는 단어에서도 역시 젊은 여성의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치카라모치 떡은 지금도 우스이토케 고개에서 기념품으로 살 수 있습니다.

토미오카 제사장을 앞에 두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벽돌로 지은 웅장한 건물, 또한, 공장 내의 설비에 너무 놀라, 아니 놀람을 뛰어넘어 두려울 정도였다고 표현한 와다 에이 씨.
당시, 국가의 위신을 걸고 만든 토미오카 제사장. 제사업 근대화에 걸었던 정부의 강한 의지가 여러분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고치의 길이, 크기, 오염의 유무 등을 선별하는 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에이 씨와 동료들이 처음 제사장에 들어와서 얼마간 이 [고치 선별]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단순작업은 괴로운 법. 문뜩 고치의 향기와 함께 졸음이 몰려오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고향에 실 생산기술을 가지고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참아내는 에이. 상상을 하면 공감이 되는 한 장면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실 잣기] 작업을 하고 싶은 에이 씨와 동료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에이 씨보다 나중에 제사장에 들어왔던 여공들이, 먼저 [실잣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럼 에이 씨와 동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어떤게 된 일이지.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분하고, 슬프고.
결국, 나중에는 제사장의 직원이 연신 사과를 하고, 애써 위로를 하여 겨우 사태가 정리가 됩니다. 큰 사건이었다고 일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실 잣기 작업실]에 들어갔을 때에는…

라고, 정말로 기뻐했겠지요. 저도 모르게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입니다.
그 외에도, 작업 중에 일어난 일들이나, 실잣기의 성적이 좋아서 일등 여공이 되었던 기쁨, 쉬는 날에는 꽃놀이를 하러 간 것과, 마을 축제를 계기로 일어난 사건, 제사장에서의 수행기간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에 제사장의 급여를 생각하고 외상으로 옷과 장식을 너무 많이 사서 돈이 없어 쩔쩔매던 모습 등, [토미오카 일기]에는 토미오카 여공들의 삶의 모습이 현실감 넘치게 펼쳐집니다.
니시죠슈 실크로드도 예습할 겸 꼭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